본문 바로가기
아이들의 교육/우리 문화

[종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by 섹시맘1004 2013. 3. 5.
반응형

 

종묘 :

조선 왕실의 사당

종묘는 조선시대 역대 왕과 왕비의 신주(神主)를 모시고 제사 지내는 국가 최고의 사당이다.

왕실의 제사를 지내는 곳이기에 반드시 국가의 도읍지에 세워야 했고, 그 위치나 형식등도 따로 규정한 제도에 의거해 정해야 했다. 지금 서울에 있는 종묘는 1395년 조선의 태조가 한양을 새 나라의 도읍으로 정한 후에 지었다.

'궁궐의 왼쪽에 종묘를, 오른쪽에 사직단을 두어야 한다'는 주례에 따라 경북궁의 왼쪽에 자리 잡았다. 지금의 종묘는 임진왜란으로 소실되어 1608년에 중건한 것이다. 건립 후 모시는 신주의 수가 늘어남에 따라 수차례 건물 규모를 늘려 현재와 같은 모습이 되었다.

종묘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건물은 정전과 영녕전이다.

조선시대에는 지금의 정전을 종묘라 하였으나, 현재는 정전과 영녕전을 모두 합쳐 종묘라 부른다.

정전의 신실 19칸에는 태조를 비롯한 왕과 왕비의 신주 49위를, 영녕전의 신실 16칸에는 34위의 신주를 모셨다.

왕위에서 쫓겨난 연산군과 광해군의 신주는 종묘에 모시지 않았지만, 왕위에서 쫓겨났다가 숙종때 명예를 회복한 단종의 신주는 영녕전에 모셨다.

종묘는 제사를 모시는 공간과 제사를 준비하는 공간으로 나뉜다.

제사를 모시는 공간으로는 정전, 영녕전, 공신당, 칠사당이 있고, 제사를 준비하는 공간으로는 재궁, 향대청, 악공청, 전사청 등이 있다. 종묘의 모든 건물은 장식과 기교를 절제하여 단조로워 보이지만, 이는 존엄하고 신성한 분위기를 위한 의도적인 장치이다.

중국이나 베트남과 달리 한국의 종묘는 건물가 더불어 제례와 제례악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

이러한 이유로 종묘는 1995년에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종묘제례 및 종묘제례악은 2001년 인류 구전 및 무형유산걸작 으로 등재 되었다.

 

정전 사진 :

 

 

 

 

영녕전 사진 :

판위 :

종묘 정전과 영녕전 동문 밖, 그리고 묘정 동북쪽에는 특별하게 만든 네모난 대가 있다.

판위라고 부르는 이 대는 왕과 세자가 제례를 할 때 잠시 멈추어 예를 갖추는 자리다.

왕이 멈추어 서는 자리는 전하판위, 세자의 자리는 세자판위라 한다.

 

신로(神路) :

신로는 종묘제례 의식을 위해 낸 것으로 신(神)만이 다니는 길을 말한다.

종묘에는 신로 외에도 신향로, 향로, 어로, 세자로 등이 있다. 종묘 외대문을 들어서면 곧바로 거칠고 넓적한 박석이 세 가닥 길로 깔려 있다. 가운데 길이 약간 높고 양옆은 약간 낮다. 가운데 길은 혼령이 다닌는 신로와 향.축문.폐백 등 제사 예물이 오가는 향로가 합쳐진 신향로이고, 오른쪽 길은 왕이 다니는 어로, 왼쪽 길은 왕세자가 다니는 세자로다. 신향로는 종묘 정전과 영녕전 남쪽에 난 대문에 이르러 묘정 상월대 아래에 닿기 때문에 이 남문을 신문이라 한다. 어로와 세자로는 재궁에 이르러 재궁 서문에서 정전 동문, 영녕전 동문으로 이어진다.

 

 

 

신실 출입문 :

정전과 영녕전 내부로 출입하는 문은 각 칸마다 두 짝씩 달렸는데, 그 맞춤이 정연하지 않고 한쪽 문짝이 약간 뒤틀려 틈새가 벌어져 있다. 아래 문턱 한 쪽에 삼각형 모양의 기다란 나무를 대어 문이 완전히 닫히지 않도록 해놓았기 때문이다. 정전과 영녕전은 앞부분을 제외한 세 면이 모두 벽돌로 완전히 막혀 있어 내부는 빛이 들어오지 않는 어두운 공간이다. 출입문의 틈새는 조상의 혼이 드나들게 하기 위한 상징적인 장치이면서, 공기가 통하게 해서 내부에 습기가 차지 않도록 하는 역할도 한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