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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의 교육/오늘의 역사

12월12일-1212 사태,1212 군사반란,전두환,노태우

by 섹시맘1004 2012. 12.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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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12일-1212 사태,1212 군사반란,전두환,노태우


1212사태 / 1212 군사반란





1079년 12월 12일 전두환, 노태우 등이 이끌던 군부 내 사조직인 하나회 중심의 신군부세력이 일으킨 군사반란사건으로

당시 최규하 대통령의 승인 없이 계엄사령관인 정승화 육군 참모총장, 정병주 특수전사령부 사령관, 장태완 수도경비사령부 사령관 등을 체포하고 사후 최규하 대통령에게 승인을 받았다.


그러면 1212사태/군사반란은 어떤 배경에서 일어났는가??

10.26 사건이 일어나 박정희 대통령이 암살된 뒤 군부에서는 주도권을 장악하기 위해 당시 합동수사본부장을 맡고 있던 보안사령관 전두환과 육군참모총장이자 계엄사령관인 정승화 간에 사건 수사와 군인사 문제를 두고 갈등이 있었다.


전두환 중심으로 한 신군부세력(하나회)은 군부 내 주도권을 장악하기 위하여 정승화가 김재규로 부터 돈을 받았다고 주장하고,

10.26 사건 수사에 소극적이고 비협조적임을 내세워 정승화를 강제 연행하기로 계획을 합니다.


계획을 실행에 옮기기 위해 11월 중순 국방부 군수차관보 유학성, 1군단장 황영시, 수도군단장 차규헌, 9사단장 노태우 등과 함께 모의한 후 12월 12일을 거사일로 정하고 20사단장 박준병, 1공수여단장 박희도, 3공수여단장 최세창, 5공수여단장 장기오 등과도 접촉을 합니다.

그리고 12월 초 전두환은 보안사 대공처장 이학봉과 보안사 인사처장 허삼수, 육군본부 범죄수사단장 우경윤에게 정승화 연행 계획을 수립하도록 지시합니다.


12월 12일 저녁 보안사 인사처장 허삼수, 육군본부 범죄수사단장 우경윤등은 보안사 수사관과 수도경비사령부 33헌병대 병력 50명은 한남동 육군참모총장 공관에 난입하여 경비원들에게 총격을 가하여 제합한 후 정승화를 보안사 서빙고 분실로 강제 연행을 합니다.


육군 참모총장 정승화의 연행에 저항할지도 모르는 특전사령관 정병주, 수경사령관 장태완, 육군본부 헌병감 김진기는 보안사 비서실장 허화평에게 유인되어 연희동 요정의 연회에 초대됩니다.

연회중 육군 참모총장 정승화의 연행사실이 전해지자 특전사령관 정병주, 수경사령관 장태완 등의 육군 장성들이 대응태세를 갖추려 했으나, 이미 전두환은 박희도와 장기오에게 지시하여 국방부와 육군본부를 점령하게 함으로써 육군지휘부를 무력화 시킨 후 였다.


이와 같은 사태들은 당시 최규하 대통령의 재가 없이 이루어졌다.


그래서 최규하 대통령의 사후 승인을 받기 위하여 신군부세력은 최규하 대통령에게 압력을 가하여 육군 참모총장 정승화 연행 재가를 요청하였으나 거절 당하였다.

이에 신군부세력은 국방장관 노재현을 체포하여 그를 통하여 최규하 대통령에게 육군 참모총장 정승화의 연행 재가를 하게 설득합니다.

결국 최규하 대통령은 13일 새벽 육군 참모총장 정승화의 연행을 재가 하였고, 이후 신군부세력은 제5공화국의 중심세력으로 등장하게 됩니다.

이 1212사태의 주도세력인 전두환과 노태우가 대통령으로 재임한 1993년 초까지 12.12사태는 집권 세력에 의해 정당화 되었으나 이후 김영삼 정부는 하극상에 의한 쿠데타적 사건이라고 규정을 하게 됩니다.



 연회 도중 총장의 연행사실이 전해지자 정병주·장태완 등의 육군장성들이 대응태세를 갖추려 하였으나, 이미 전두환이 박희도와 장기오에게 지시하여 국방부와 육군본부를 점령하게 함으로써 육군지휘부를 무력화시킨 후였다.

이와 같은 일련의 사태진전은 당시 대통령 최규하의 재가 없이 이루어졌다. 사후 승인을 받기 위하여 신군부세력은 최규하에게 압력을 가하여 총장연행 재가를 요청하였으나 거절당하였다. 이에 신군부세력은 국방장관 노재현을 체포하여 그를 통하여 대통령이 총장연행을 재가하게 설득하였다. 결국 최규하는 13일 새벽 정승화의 연행을 재가하였고, 이후 신군부세력은 제5공화국의 중심세력으로 등장하였다.

이 사건의 주도세력인 전두환과 노태우가 대통령으로 재임한 1993년 초까지 12·12사태는 집권세력에 의하여 정당화되었으나, 그후 김영삼정부는 하극상에 의한 쿠데타적 사건이라고 규정하였다.

 

당시 보안사령관이었던 전두환 소장은 1212 군사 반란으로 군부 권력을 장악하고 정치적인 실세로 등장을 했습니다.

이후 1980년 5월 전두환을 중심으로한 신군부는 5.17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장악하고 5.17 쿠데타에 항거한 5.18 민주화운동을 무력으로 진압합니다.

 

전두환은 1980년 8월 22일에 육군 대장으로 예편했고 1980년 9월 대한민국 제11대 대통령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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